시대와의 불화

[세종=한국인터넷기자클럽] 칼럼니스트 수연(水然)= 언제부터 인지는 정확히 모른다. 아주 오래 전부터, 어쩌면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인지도 모른다.

나는 현대 문명의 미아(迷兒)이다. 나는 현대문명의 부적응자임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. 물론 지금까지 문명의 한 귀퉁이에 매달려 간신히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. 때론 고뇌하고 때론 좌절하고 때론 절망하고, 때론 자위하고 때론 희희낙락하면서.

그런데 난 언제나 문명에 속할 수 없었다. 늘 문명의 언저리를 빙빙 맴돌았다. 기회만 있으면 끊임없이 남몰래 이 문명에서 탈출하는 거대한 음모를 꿈꾸었다. 이 거추장스런 문명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그 날을 동경하였다.

어쩌면 이 지구는 내가 머물 별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. 어쩌다 우연히 발을 대딛었다가 꼼짝없이 거미줄에 갇히고만 길 잃은 나비의 운명이랄까. 내 언제쯤 나를 옭아매고 있는 저 문명의 거미줄을 과감히 툭 끊어내고, 인간 생명의 본향, 자연으로 회귀할 수 있을까?

물론 나는 이 지구를 사랑한다. 저 찬란한 대지를 사랑한다. 저 대지 위의 꽃과 나무와 돌과 시냇물, 별, 그리고 이 우주에서 가장 찬란한 존재인 인간이라는 생명을 깊이 사랑한다.

인간이 만든 음악, 문학, 미술, 건축, 춤 등 모든 예술을 사랑한다. 하지만 인간이 만든 이 거대한 괴물인 이 문명만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. 대지를 모독하고, 이 대지의 풀과 꽃과 뭇 생명 그리고 결국 인간마저 파멸로 몰고 갈 이 거대한 괴물만은 사랑하지 못 하겠다.

일찍이 생떽쥐뻬리는 "나는 내 시대를 증오한다."라고 토로했다. 그가 증오한 것은 우리 인간 자체는 아니었으리라. 그가 그토록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의 타락한 심성이요, 이기심이요, 물욕이요, 메마른 인간성이었다. 그가 그토록 경계한 것은 인간이 만든 이 섬뜩하고 가공할 괴물, 바로 현대문명과 이를 만든 인간의 마음이었다.

아! 인간의 별에, 생명의 별에 인간도 뭇 생명도 편히 쉴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. 이 지구를 진정 사랑한다면, 생명을 진정 존중한다면, 신을 진정 경배한다면, 어찌 이 병든 문명을 마냥 즐기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? 정직한 자기 성찰이야 말로 자신에 대한 가장 진실한 사랑일지도 모른다.(수연)

수연(水然) 기자  root8959@hanmail.net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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